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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치료자 얄롬과 함께..

내가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얄롬의 '나는 사랑의 처형자가 되기 싫다'이다.

이 책은 얄롬의 '실존주의적' 접근으로 치유를 어떻게 할 수 있는가를 너무나 잘 보여주고 드라마틱한 전개가 일품인 책이다. 내가 지금 이 책을 소개 혹은 광고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고 이 '실존주의적 접근' 이라는게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기 위해서 글을 쓰는 것이다.

실존주의적 접근이라고 하면 흔히 '죽음' 이나 '존재'에 대해서 먼저 떠올리게 되고, 인간이 '죽음'을 앞에 두고(혹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앞에 두고) 자신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직면했을때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되고, 그때의 어려움을 해결해나가야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접근이었다.

이 책을 감동적으로 다 읽고 난 다음 개버릇 남 못준다고 반골기질이 슬슬 일어나기 시작했다.

'존재'라는 것은 꼭 '죽음'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가 있어야지만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일까? '죽음'이나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없으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누구나 다 알다시피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는 공포가 없어도 존재하고 죽음을 눈앞에 두지 않아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존재를 증명하려면 아주 골치아프니까 넘어가기로 하자.)

그렇다면 우리는 '죽음'이나 '죽음의 공포'를 만나지 않고 언제 어떻게 자신이 존재함을 알 수 있을까? 이것에 대한 해답은 아주 오래전에 어떤 철학자에 의해서 이미 말해졌다.

'네 자신을 알라'

내가 나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내가 앞으로 나아갈 길이 어디인지.. 끊임없이 자신을 모니터링 하고, 자신의 내부를 지켜볼 수 있다면 그는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끊임없이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나 자신을 모니터링하려면 나는 그곳에 존재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살아있음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변화'하기를 꿈꾼다. 심지어는 변화하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들 중에는 마지 '죽어가는 것 같아'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변하고 싶다' 혹은 '변화하기를 바란다' 라고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자신의 현재'를 보려고 하지는 않는다. 변화 라는 것은 A가 A'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A를 확인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A'가 되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겠냐는 말이다. 결국 자신이 변화하고 싶다. 혹은 더 나은 삶을 살고싶다고 하려한다면 자신이 현재 어떠한 모습인지를 확인하지 않으면 변화하는 것도 모른다는 것이고, 자신이 변화하는지도 모르면서 '변화하고 싶다' 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 된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현재'에 대해서 모니터링 함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고, 그 자신에 대한 증명은 곧 자신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실존심리적 접근에서 '죽음'과 '죽음에 대한 공포' 그리고 '존재의 한계'등을 제거하고 나면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자신을 끊임없이 모니터링하는 자신이 남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이 자신의 현재를 끊임없이 모니터링할 수 있다면 존재적 문제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시 얄롬의 책으로 돌아와서 나는 얄롬의 책을 읽고 그 안에서 많은 희망을 보았다. 얄롬이 인간에 대해서 접근하는 기본적인 접근법은 내가 상담에서 하는 접근법과 아주 많은 부분 근접하다고 느꼈다. 물론 얄롬의 접근법이 훨씬 아름답고 정교하며 세련되다. 하지만 얄롬이 내 나이였을때부터 이러한 접근법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을까? 그때도 이 접근법을 썼을까?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더 멋지게 되기 위해서(얄롬을 닮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건 아주 중요하다.) 계속 자신을 모니터링하고 변화해나갈 것이다.

언젠가 시간이 더 지나고 난다면 나도 얄롬처럼 훌륭하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타로마스터 최정안.
등록자

최정안

등록일
02-22
조회
5,7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