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술이란 과연 무엇일까?
연금술 하면 흔히 중세 서양에서 있어왔던 구리나 납을 금이나 은으로 바꾸려고 하는 어리석은 시도에 대해서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동양적인 관점에서는 불로불사의 약을 만들려고 하는 시도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 많은 만화에서 나왔던 '현자의 돌'을 가져야 이룰 수 있고, 결국 연금술의 목적은 이 '현자의 돌'을 만들어 내거나 발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들은 원형적인 의미에서 훨씬 높은 고차원의 이야기를 숨긴채 전승해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것에 대한 깊은 탐구를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심리학자 융이 새로이 재해석을 시도했다.
원래 연금술의 의미는 이러했다.
인간은 그 스스로를 '구리'나 '납' 처럼 보잘것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그것이 '현자의 돌'을 만남으로서 보다 높은 차원의 '금' 혹은 '은'의 모습으로 변형되기를 바랬던 것이다.
이것을 이 글의 의미대로만 해석하자면 '구리'나 '납'을 '금'혹은 '은'으로 바꿔서 금전적으로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전해진 것이고 이것이야 말고 '구리'나 '납'수준의 사람들이 이해하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금'과 '은'레벨의 사람들은 이것을 이렇게 해석했다.
인간은 현재의 모습(현실에서의 모습)에서 '현자의 돌(Atman)'을 만나게 됨으로서 더 큰 사람, 더 깨어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잠시 부연을 하자면 '현자의 돌'은 '물아일체의 상태' 혹은 '원형의 상태(Atman)', '그리스도의 의식', '불성' 등의 정신으로서의 최고의 단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연금술이라는 것은 물질계에서의 이야기가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연금술이란 자신을 수련하고, 나와 남이 다르지 않으며, 내가 우주이고, 우주고 곧 다시 '나'임을 깨달았을 때 비로서 자신은 '구리'나 '납'인 인간의 모습에서 '금'과 '은'과 같은 높은 정신세계를 가진 완전히 새로운 '나'가 될 수 있음을 의미했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만큼만 알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깨달음의 높이를 높은 차원으로 올릴수록 더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고, 옛 현자들의 이야기들에 속지 않고 그 진의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들도 이 글이 작은 단초가 되어서 눈 앞의 작은 눈속임들에 속지 않고,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타로마스터 최정안.
연금술 하면 흔히 중세 서양에서 있어왔던 구리나 납을 금이나 은으로 바꾸려고 하는 어리석은 시도에 대해서만 알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동양적인 관점에서는 불로불사의 약을 만들려고 하는 시도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 많은 만화에서 나왔던 '현자의 돌'을 가져야 이룰 수 있고, 결국 연금술의 목적은 이 '현자의 돌'을 만들어 내거나 발견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들은 원형적인 의미에서 훨씬 높은 고차원의 이야기를 숨긴채 전승해진 것이라고 생각된다. 이것에 대한 깊은 탐구를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심리학자 융이 새로이 재해석을 시도했다.
원래 연금술의 의미는 이러했다.
인간은 그 스스로를 '구리'나 '납' 처럼 보잘것 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으며 그것이 '현자의 돌'을 만남으로서 보다 높은 차원의 '금' 혹은 '은'의 모습으로 변형되기를 바랬던 것이다.
이것을 이 글의 의미대로만 해석하자면 '구리'나 '납'을 '금'혹은 '은'으로 바꿔서 금전적으로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전해진 것이고 이것이야 말고 '구리'나 '납'수준의 사람들이 이해하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금'과 '은'레벨의 사람들은 이것을 이렇게 해석했다.
인간은 현재의 모습(현실에서의 모습)에서 '현자의 돌(Atman)'을 만나게 됨으로서 더 큰 사람, 더 깨어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잠시 부연을 하자면 '현자의 돌'은 '물아일체의 상태' 혹은 '원형의 상태(Atman)', '그리스도의 의식', '불성' 등의 정신으로서의 최고의 단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연금술이라는 것은 물질계에서의 이야기가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연금술이란 자신을 수련하고, 나와 남이 다르지 않으며, 내가 우주이고, 우주고 곧 다시 '나'임을 깨달았을 때 비로서 자신은 '구리'나 '납'인 인간의 모습에서 '금'과 '은'과 같은 높은 정신세계를 가진 완전히 새로운 '나'가 될 수 있음을 의미했던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만큼만 알 수 있다.
우리는 우리의 깨달음의 높이를 높은 차원으로 올릴수록 더 많은 것을 깨달을 수 있고, 옛 현자들의 이야기들에 속지 않고 그 진의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들도 이 글이 작은 단초가 되어서 눈 앞의 작은 눈속임들에 속지 않고,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타로마스터 최정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