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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c art


Public art



공공미술 : 대중들을 위한 미술을 뜻하는 미술용어.

며칠 전 Public art에 대한 인터뷰를 보게 되었다. 전반적인 내용은 공공미술과 공공사이의 괴리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요약을 하자면 이러한 내용이었다. 낙산프로젝트라는 대규모 공공미술프로젝트가 있었다. 그 중에는 정말 아름다운 작품들이 많았는데, 그곳을 들르는 공공들이 공공미술을 자꾸 파괴한다는 것이다. 그 중에 가장 안타까운 작품이 담장위에 설치된 '신현운'씨의 '포옹'이라는 작품이다.







한 쌍의 연인이 저 끝에서 부터 달려와서 포옹을 하는 모습을 담은 작품인데, 가운데 포옹을 한 장면의 조각을 계속 누군가가 훔쳐 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오는 이야기는 과연 공공미술이 공공의 수준에 맞춰야 하는지, 아니면 공공의 수준이 올라가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괴리를 이야기 하게 된다.

그 중 한명의 미술가가 한 이야기가 안타깝게 마음속에 남아있다.



'공공미술이란 공공의 수준에 맞춰서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건 공공미술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공공미술을 파괴하는 공공의 수준에 대해서 투덜대지 말고 그들의 수준에 맞는 미술 작품을 보여줘야 합니다.'



참 맞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아쉬움이 남는 것은 그렇다면 우리가 볼 수 있는 미술 작품은 아주 '거대'하고 '덩어리가 크고' '낚서를 할 수 없는 재질'에 '공공의 손이 닿을 수 없는 먼 곳'에 있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섬세한 예술을 공공이 접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어쩌면 공공 스스로 자신을 점점 더 높은 단계의 예술로부터 멀어지게 하는데 힘쓰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공공의 수준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더 있다.



남대문 화재때 이야기이다. 사람들이 남대문 화재로 인해서 떨어져나온 기왓장을 집어다가 집에서 기념품으로 삼는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어떤 사람은 그것을 판매용으로 내놓기 까지 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비난하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나의 제자도 눈살을 삐푸렸다. 이해한다 나도 처음엔 그런 반응이었으니까. 하지만 한번 더 생각해보자.



쉽게 얻은 답은 정답이 아니기 쉽다.


기왓장은 화재이후 건설폐기물일 뿐이다. 게다가 기와라는 것이 원래 50-60년마다 한 번씩 갈아줘야 하는 소모품일 뿐이다. 도데체 그들이 무엇을 잘못했다는 건지 알수가 없다. 우리나라의 박물관은 그 대중들의 외침처럼 기와 하나하나 쪼가리 하나하나를 보관할만큼 넓지 않고, 그것을 보관해야 할만큼 문화유산이 적지 않다.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



광우병 쇠고기 이야기도 잠깐 해 보면..



한국은 지금 광우병 소 때문에 공포에 휩쌓여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래서 영국에서, 미국에서 광우병으로 인해서 죽은 사람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 수가 '알콜중독'과 '음주운전' '담배로 인한 폐암' 보다 높은지 궁금하다.
광우병 때문에 이렇게 까지 큰 운동이 일어나는 것 보다 금주, 금연을 하는 편이 더 자신의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대중의 현실에 대한 아주 재미있는 실험도 있다.
이번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한국에 와서 강연한 내용 중에 있는 실험을 조금 설명하자면 이렇다.

6명의 대조군(가짜 실험참여자)가 있고, 1명의 진짜 실험 참여자가 있다.
그리고 25cm의 선과 30cm의 선 중에서 어느쪽이 더 긴가? 라고 물었을 때 앞에서 6명의 가짜 실험자들이 짧은 것을 선택한다면, 진짜 실험자중에서 60%가 25cm 쪽을 길다고 이야기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40% 중에서도 6명의 다른 실험자들이 놀리거나 말도 안된다고 이야기를 하면 다시 30%는 자신의 선택을 번복해서 결국 총 실험자의 90%가 짧은 쪽을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재미있는 것은 이 실험이 끝나고 사실은 당신이 실수하기를 바라면서 한 실험이고 30cm이 더 긴 선이 맞다 라고 하면 10%는 아니다 그럴리 없다. 25cm이 더 길다고 주장을 하고, 나머지들은 시각적인 문제가 있었다 등의 변명으로 일관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대중이다.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보통의 사람들, '다들 그렇게 살아' 라고 말하는 대중들의 정체이다.



얼마나 안타까운 이야기이란 말인가.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해 본다. 심지어는 부처에게 조차도 '그 아이는 안돼' 라고 말을 듣는 사람이 있는데, 내가 대중의 수준에 대해서 논하고, 왜 눈에 뻔히 보이는 것 조차 보지 않으려 하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는게 얼마나 내 주제를 모르고 하는 이야기 인가 하는 것이다. 안타깝다.



그래도 나는 아무리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느끼더라도 예수의 사랑을 가슴에 담고 사람들을 만나러 가고 그들의 발전을 부처의 마음으로 빌고 있다. 그 과정중에 아무리 좌절을 느끼더라도 말이다.


타로마스터 최정안
등록자

최정안

등록일
05-22
조회
7,731

댓글 1

주선자

예리한 통찰을 여기서 봄니다. 감사해요
2018-07-07 19: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