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등록금의 카르텔
한국은 지금 대학 등록금 문제로 전국이 난리가 났다. 정치적 이슈이면서 사회적 이슈이기도 하고, 당장 현실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문제가 어떻게, 왜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그 구조적인 카르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이 시스템이 이해가 된다면 지금의 대학 등록금 문제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었으며 아주 아름답고 정교하게 디자인된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대학 등록금 문제의 가장 큰 핵심은 대학이 서열화 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의 서열화가 왜 중요한 문제냐면 결국 부익부 빈익빈을 만들게 되기 때문인데, 이 이야기는 잠깐 뒤로 하고, 이 대학의 서열화가 왜 일어나느냐부터 생각해야 할 것이다.
대학이 서열화가 되면 가장 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일까? 사교육 학원? 아니면 대학? 사실은 대기업이 가장 먼저 이득일 보게 된다. 왜냐면 대기업에서 한 명의 구직자를 모집하기 위해서 1000명의 지원자가 있을 때 기업에서는 1000개의 이력서를 다 읽어볼 시간적, 비용적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일일이 다 보고 판단하려면 너무나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에 그것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떤 기준이 필요하고 그것을 대학의 서열로 정해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1000개의 이력서를 다 볼 필요가 없이 서울대생만 남기고 나머지 이력서는 다 쓰레기통에 버려도 큰 문제가 안생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럼 이때 ‘학력’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기에 기업에서 직원을 뽑을 때 학력이라는 기준 하나만으로 뽑겠느냐? 라는 의문이 들텐데, 학력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얼마나 성실한가.’이다. 성실하지 않고 서울대 혹은 소위 SKY에 갈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얼마나 머리가 좋은가.’ 이다. 머리가 나쁜데도 SKY에 갈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좋은 학력이라는 것은 성실하고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기업에서 직원을 뽑는데 불성실하고 머리나쁜 사람을 뽑고 싶지 않을 테니 일단 SKY 뽑는 거다.
그렇게 하기위해서 기업은 대학의 서열화를 조장해야하고, 그러기 위해서 특정 대학에 특정 대기업이 대대적인 경제적 지원과 취업의 우선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취업을 목적으로 공부하던 학생들이 그 특정대학에 지원하게 되고, 우수한 인재들이 모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무한 경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럼 이때 대학은 기업으로부터 지원을 받았으니 대기업에 뭔가 보답을 해야 할 텐데 어떻게 보답을 할까? 학생을 잘 가르친다거나 산학협동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그보다 훨씬 쉬운 보답이 있다. 그것은 등록금을 올리는 것이다. 분명 대기업으로부터 지원금도 충분히 받았고, 학생 수도 그만큼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등록금을 높이는가? 그것은 간단하게 말해서 그들을 빚쟁이로 만들기 위해서다. 왜냐면 부채가 많은 사람은 결국 직장에 목을 매게 될 것이고, 한번 들어간 직장에서 이직을 하는 것이 쉽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직장에 충성을 맹세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대학, 대기업의 카르텔에 의해서 학생들만 죽어나가는 형국이 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시스템은 미국의 대학시스템을, 소위 아메리칸 스텐다드를 따라한 것인데, 미국에서 이 시스템을 만든 재단이 바로 그 유명한 ‘록펠러 재단’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노동자들을 많이 공급하게 하기위한 시스템을 만든 것이지 그들의 창의성이나 리더쉽 같은 것은 관심이 없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이 이 시스템을 그나마 잘 유지하고 있는 것은 수많은 독지가들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에 유지가 가능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대기업이 지원을 하는 돈들을 학교가 탐욕스럽게 자신을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등록금을 감면하는데 쓰기 때문에 지금까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기여입학이나 공공을 위한 적극적인 투자지원 같은 것에 관심이 없으니 문제는 점점 커져만 가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안정적인 일자리의 공급이 중요해지는데, 아주 쉬운 해결책이 있다. 9급 공무원 지원 자격을 ‘고졸이하’ 로 만들면 된다. ‘대졸-초대졸’은 9급 공무원에 아예 지원 자격을 주지 않는 거다. 그렇게 고졸들에게 안정된 직업의 공급처를 만들어주고 나면 굳이 대학에 모두 가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고, 사회에 반드시 있을 수밖에 없는 ‘성실하지 않고, 머리도 나쁜’사람들도 먹고살 길이 생기니 모두 대학을 가겠다고 악다구니를 쓸 일도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대학지원자 수가 줄게 될 것이고, 그러면 정말 학문을 하고 싶은 사람이거나 아니면 집안에 돈이 많은 사람만 대학에 가면 되는 상황이 될 것이다. 그러면 먹고살기 위해서 대학을 꼭 가야할 필요도 없어지게 될 것이다. (물론 양극화를 피하기 위해서 직접세의 강화는 당연히 따라와야 할 것이다.)
타로마스터 최정안
한국은 지금 대학 등록금 문제로 전국이 난리가 났다. 정치적 이슈이면서 사회적 이슈이기도 하고, 당장 현실을 살아가는 청년들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문제가 어떻게, 왜 생겼는지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는 것 같아서 그 구조적인 카르텔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이 시스템이 이해가 된다면 지금의 대학 등록금 문제가 하루 이틀의 문제가 아니었으며 아주 아름답고 정교하게 디자인된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 대학 등록금 문제의 가장 큰 핵심은 대학이 서열화 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의 서열화가 왜 중요한 문제냐면 결국 부익부 빈익빈을 만들게 되기 때문인데, 이 이야기는 잠깐 뒤로 하고, 이 대학의 서열화가 왜 일어나느냐부터 생각해야 할 것이다.
대학이 서열화가 되면 가장 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일까? 사교육 학원? 아니면 대학? 사실은 대기업이 가장 먼저 이득일 보게 된다. 왜냐면 대기업에서 한 명의 구직자를 모집하기 위해서 1000명의 지원자가 있을 때 기업에서는 1000개의 이력서를 다 읽어볼 시간적, 비용적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일일이 다 보고 판단하려면 너무나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에 그것을 줄이기 위해서는 어떤 기준이 필요하고 그것을 대학의 서열로 정해버리면 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1000개의 이력서를 다 볼 필요가 없이 서울대생만 남기고 나머지 이력서는 다 쓰레기통에 버려도 큰 문제가 안생기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럼 이때 ‘학력’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기에 기업에서 직원을 뽑을 때 학력이라는 기준 하나만으로 뽑겠느냐? 라는 의문이 들텐데, 학력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2가지가 있다. 하나는 ‘얼마나 성실한가.’이다. 성실하지 않고 서울대 혹은 소위 SKY에 갈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얼마나 머리가 좋은가.’ 이다. 머리가 나쁜데도 SKY에 갈 수 있을까? 쉽지 않을 것이다. 결국 좋은 학력이라는 것은 성실하고 머리가 좋은 사람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기업에서 직원을 뽑는데 불성실하고 머리나쁜 사람을 뽑고 싶지 않을 테니 일단 SKY 뽑는 거다.
그렇게 하기위해서 기업은 대학의 서열화를 조장해야하고, 그러기 위해서 특정 대학에 특정 대기업이 대대적인 경제적 지원과 취업의 우선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취업을 목적으로 공부하던 학생들이 그 특정대학에 지원하게 되고, 우수한 인재들이 모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무한 경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럼 이때 대학은 기업으로부터 지원을 받았으니 대기업에 뭔가 보답을 해야 할 텐데 어떻게 보답을 할까? 학생을 잘 가르친다거나 산학협동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다. 그보다 훨씬 쉬운 보답이 있다. 그것은 등록금을 올리는 것이다. 분명 대기업으로부터 지원금도 충분히 받았고, 학생 수도 그만큼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왜 등록금을 높이는가? 그것은 간단하게 말해서 그들을 빚쟁이로 만들기 위해서다. 왜냐면 부채가 많은 사람은 결국 직장에 목을 매게 될 것이고, 한번 들어간 직장에서 이직을 하는 것이 쉽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직장에 충성을 맹세할 수밖에 없는 형국이 된다는 것이다.
이렇게 대학, 대기업의 카르텔에 의해서 학생들만 죽어나가는 형국이 된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이 시스템은 미국의 대학시스템을, 소위 아메리칸 스텐다드를 따라한 것인데, 미국에서 이 시스템을 만든 재단이 바로 그 유명한 ‘록펠러 재단’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노동자들을 많이 공급하게 하기위한 시스템을 만든 것이지 그들의 창의성이나 리더쉽 같은 것은 관심이 없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국이 이 시스템을 그나마 잘 유지하고 있는 것은 수많은 독지가들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에 유지가 가능한 것이다. 다시 말해서 대기업이 지원을 하는 돈들을 학교가 탐욕스럽게 자신을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등록금을 감면하는데 쓰기 때문에 지금까지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기여입학이나 공공을 위한 적극적인 투자지원 같은 것에 관심이 없으니 문제는 점점 커져만 가는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결국 안정적인 일자리의 공급이 중요해지는데, 아주 쉬운 해결책이 있다. 9급 공무원 지원 자격을 ‘고졸이하’ 로 만들면 된다. ‘대졸-초대졸’은 9급 공무원에 아예 지원 자격을 주지 않는 거다. 그렇게 고졸들에게 안정된 직업의 공급처를 만들어주고 나면 굳이 대학에 모두 가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고, 사회에 반드시 있을 수밖에 없는 ‘성실하지 않고, 머리도 나쁜’사람들도 먹고살 길이 생기니 모두 대학을 가겠다고 악다구니를 쓸 일도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대학지원자 수가 줄게 될 것이고, 그러면 정말 학문을 하고 싶은 사람이거나 아니면 집안에 돈이 많은 사람만 대학에 가면 되는 상황이 될 것이다. 그러면 먹고살기 위해서 대학을 꼭 가야할 필요도 없어지게 될 것이다. (물론 양극화를 피하기 위해서 직접세의 강화는 당연히 따라와야 할 것이다.)
타로마스터 최정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