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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구의 업

하수구가 몇일 전부터 막혔는지 계속 물이 잘 안내려 가더군요.

그동안 하수구 위에 머리카락 쌓이는 것들을 꾸준히 치웠는데도 불구하고 골골대는게 불안하더군요.
이걸 어째야 하나 언젠가는 치워줘야 하는거긴 한데, 라고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샤워를 하려는데 저걸 안 치우면 또 물이 잘 안내려가고 불편할텐데, 라고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하수구 뚜껑을 여는데 잘 안열리고 뭐가 그리 서운했는지 힘들게 하더군요

그래서 힘들게 힘들게 열었는데, 하수구 한 1년 청소 안한거 열어보신분이 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순간 왈칵 토약질이 나오려고 하는 것을 간신히 참았습니다. 그것을 치우면서 손을 대기 싫어서 이리 저리 머리를 굴리다가 문득 떠오른게 있습니다.

이게 다 내 몸에서 나온 것인데..

내가 이곳에 온지 딱 1년 되었는데, 그 때는 깨끗했쟎아,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게 다 내 몸에서 나온거고, 내가 만들어 낸 것인데 왜 내가 더럽다고 손으로 치우지 못하고 있는걸까.
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침도 내 몸에 입 속에 있을땐 깨끗하다고 생각하지만 뱉는 순간 더럽기 그지 없는 것이고, 때도 몸에 붙어있을 때는 모르다가 벗기면 더러운 것이고, 발우공양의 마지막 헹굼물역시도 먹을땐 식사의 일부였는데...

어째서 더럽다 내치는 것일까? 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하수구의 때가 나의 '업'이지 않을까? 내가 살면서 조금씩 조금씩 나도 모르게 쌓아가는 업이지 않을까..
내가 내 몸 씻기를 게을리 하는데도 불구하고 1년만에 저 정도의 업이 쌓였으니 몸 말고 마음으로 쌓은 업은 그동안 치운적이 없으니 저것의 30배 만큼은 쌓였겠구나..
이건 눈에 보이니 치우고 없앨수나 있지 마음으로 쌓은 업은 어떻게 치우나..
내가 몸으로 쌓은 업이 지금 보이는건 이것 뿐이지만 그 말고도 여기저기 많을텐데 그것들 만큼 마음의 업도 여기저기 널려 있겠구나..

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살아오면서 아프게 했던 많은 사람들, 그네들 마음 속에 내가 쌓은 업들도 언젠가는 이 하수구 처럼 깨끗하게 치워줄 수 있는 날이 올까?

그래서 결국 하수구를 뚫고 그냥 덮어 놓을까 생각을 하다가 내가 마지막에 지나고 나서 나 지나간 자리에 아무런 업도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 라는 생각이 들어서 하수구 부품들 하나하나에 남은 때를 대충 치웠습니다. 일단 보기에는 아주 깨끗해 보이니 마음이 편하더군요.
마치 마음으로 쌓은 업 역시 같이 씻어진듯 기뻤습니다.

앞으로도 한 1년 정도는 아마 이런 생각을 잊고 살겠죠. 하지만 다시 내년이 되었을 때 하수구를 뚫으면서 다시 이 생각을 떠올릴 수 만 있어도 기쁠것 같네요.

타로마스터 최정안.
등록자

최정안

등록일
01-30
조회
5,1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