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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무엇을 알길래 타로를 하는가?

너는 무엇을 알길래 타로를 하는가?

명상센터에서 처음으로 선생님이 나를 궁지에 몰았던 질문이다. 그 앞에는 운명에 대한 질문이라던가 인간에 대한 질문이라던가 등등 타로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한번쯤 고민했어야 하고 뚜렷하게 알고 있어야 할만한 질문이라서 아주 쉽게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질문에서는 한번 쉬어 갈 수 밖에 없었다.

너는 내담자보다 무엇을 더 안다고 타로를 하고 있는거냐? 라는 질문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그 사람의 그 문제에 대해서 세상의 누구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은 그 자신일 것이고, 해결책을 생각해 본 것도 그 스스로가 훨씬더 많을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말하지 못한 정보까지 생각하면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아주 적은 주어진 정보와 단순히 깔려있는 모호한 이미지의 카드 몇장일 뿐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때 이 상황에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그것은 절대로 내가 될 수 없다. 타로리더가 그것에 대해서 더 많이 알고 있을 수 없고, 그렇기 때문에 전혀 대답을 줄 수 없다. 그렇다면 어쩌자고 나는 계속 타로를 하고 있는것일까?

이 질문을 받고 꽤 오랜시간을 좌복(명상할때 앉는 방석)위에서 멍하니 앉아있을 수 밖에 없었다. 객관적으로 주관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생각해도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하고 생각하고 생각했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 조금씩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그것은 '깨어있음'이다. 눈을 뜨고 있다는 것이 항상 깨어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 상황에 깨어있고, 그 현실에 깨어있고, 그 시간에, 그 공간에, 그리고 자신에게 깨어 있을 때 답이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 사람들은 깨어서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때로는 '맞지 않는 열쇠'로 같은 문을 수십번 수백번 열려고 한다. 만약 집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열쇠가 맞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 옆에 있는 열쇠를 사용하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많은 경우 사람들은 '수십년동안 해왔던 전혀 도움이 안되는 방법'을 앞으로도 '수십년동안 더 할것이다'라고 굳게 다짐하고 있다. 그런 사람들은 이런 말을 좋아한다.

'나도 아는데..'

알면 하면 된다. 그게 쉽냐? 라고 반문 하는데. 답은 간단하다. '어렵다'. 어렵다면 하지 않을 것인가? 그렇게 수십년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아갈 것인가? 어렵지만 언젠가 해야 한다면 지금 하는게 좋은것 아닌가? 언제까지 뒤로 미루기만 할것인가.
게다가 깨어서 그것을 똑바로 바라볼 수만 있다면 그것은 항상 어렵지만도 않다. 어둠속에서 열쇠를 찾는 것은 어렵다. 하지만 눈을 뜨고 열쇠를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열리지 않는 열쇠로 문앞에서 고생하고 싶지 않다면 눈을 떠라.

타로마스터 최정안.
등록자

최정안

등록일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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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