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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와 야수, 상징으로 읽어보자.


미녀와 야수, 상징으로 읽어보자.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구전되고,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쯤은 읽었을 미녀와 야수를 상징을 통해서 분석해본 글입니다. 따로 쓸 일이 있어서 작성했던 것인데 내용이 마음에 들어서 이렇게 공개를 해 봅니다.

이 글에서는 ‘미녀와 야수’이야기를 한 사람이 꾼 꿈이라고 가정하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역추적해가 보았습니다. 다소 불편한 내용이 있을지라도 그것은 다 저의 부끄러운 투사이므로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꿈은 꿈의 주인이 아마도 첫 성경험을 하거나 혹은 자신의 성욕 혹은 성욕을 가진 남성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여성이 꾼 꿈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꿈에서 아버지는 일 때문에 어딘가로 자리를 비우며 바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신의 일 처리를 잘하거나 유능한 편은 아닙니다. 이것은 꿈꾼이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남성상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꿈속의 아버지는 그다지 유능하지 못하지만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며 현실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는 꿈꾼이의 시선일수도 있어 보입니다.

아버지가 선물로 무엇을 받았으면 좋겠냐고 하니까 빨간 장미 한 송이를 가지고 싶다고 합니다. 이때 빨간 장미는 여성이 첫 성교를 할 때 흘리는 피를 상징하는 것 같습니다. 장미는 다른 의미로는 영성을 상징하기도 한다고 할 때 어쩌면 절정체험을 의미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성적인 경험을 의미한다고 보는 편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장면에서 꿈꾼이는 자신 안에 성적인 욕구가 있음을 어렴풋이나마 알아차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집으로 돌아오던 중에 숲에서 길을 잃고서 헤매다가 성을 발견하고 그 성으로 들어갑니다. 여기서 숲은 꿈꾼이가 가지고 있는 내적인 공간, 자연스러운 자신의 욕구의 공간 자체를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또는 여성의 음모를 흔히 숲이라고도 하는데 그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서양에서도 그렇게 표현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 안에서 성을 발견하게 된다고 하는데 성은 무엇인가 보물을 감춰둔 곳 이라는 의미로 주로 사용되고 또한 남성의 성기를 의미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찾아가는 것도 의도하고 찾아간 것이 아니라 실수로 찾아갔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이 성경험이 어쩌면 자신의 의도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우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성에 들어간 아버지는 주인을 찾았지만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음식과 잠자리가 준비되어 있어서 아버지는 하룻밤을 머물게 됩니다. 성은 보물이 있는 곳인데 그곳에 아직 주인이 없다는 것은 아직은 그 보물의 주인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고 꿈꾼이가 완전히 자신의 보물의 주인행세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미성숙을 의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과는 관계없이 그곳은 언제나 꿈꾼이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하루를 잘 지내고 난 다음 다시 길을 떠나면서 장미 한 송이를 꺾는데 이때 야수가 나타나서 화를 내기 시작합니다. 하룻밤을 잔다는 것은 죽고 다시 태어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완전히 새로 태어나 다름 단계로 나아가는 과정은 하나의 통과의례처럼 성적인 경험을 내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주인(꿈꾼이)의 허락 없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 안에 있던 자신의 주인(야수)가 나타나서 불같이 화를 내게 되는 것입니다.

야수는 원래 인간이었으나 저주에 걸려서 야수가 되었고, 장미가 다 시들기 전에 다시 사랑을 해야지만 다시 인간이 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야수는 꿈꾼이의 다듬어지지 않은 성욕을 의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원래는 자신의 것이었으나 사회적 풍토나 혹은 가정에서의 교육에 의해서 억눌려져야만 했고, 그것은 결국 나쁜 것으로 치부될 수밖에 없었던 것같습니다. 그러다가 장미가 시들기 전, 다시 말해서 너무 늦기 전에 그 성욕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뿐만 아니라 원상태로 바꿔놓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이 결국 이 꿈이 이야기하는 가장 핵심 포인트인 것 같습니다.

야수는 아버지에게 딸의 존재를 묻고 딸을 데려오면 살려주겠다고 하고 아버지는 딸을 데려오게 됩니다. 어쩌면 이 부분은 꿈꾼이가 자신의 의지와는 별로 관계없이 누군가와 지속적으로 성적인 관계를 맺어야만 했던 상황을 의미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굳이 강제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자신이 자신의 성욕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채로 누군가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추론이 가능해 보입니다. 혹은 자신 내부에서 지속적으로 성적인 욕구가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올라오고 있다는 추론도 가능해 보입니다.

아버지는 딸이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만 딸은 성에서 편안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보여지는 꿈꾼이의 성욕은 위험하고 나쁜 것으로 간주되어지지만 사실 꿈꾼이는 서서히 그 관계에 적응하고 자신의 성욕을 받아들이고 있는 상황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도 의식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어쨌든 점점 익숙하고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딸을 구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모아서 성으로 가게 됩니다.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는 성욕과 또 부모에 대한 죄책감이 부각되는 장면이라고 생각됩니다. 사회적 관습이나 도덕적 관습에 의해서 자신의 성욕이 계속 부정당하고, 자신의 성생활 자체도 계속 부정당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람들에 의해서 야수는 거의 죽을 지경이 됩니다. 사회적 시선과 꿈꾼이 자신의 내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사이의 갈등은 자신의 성욕 자체를 죽여버리는 상황으로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거의 죽을 지경이 된, 혹은 죽은 야수를 바라보면서 딸은 자신이 야수를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고 사랑한다고 말하자 야수는 다시 인간으로 되살아납니다. 사회적 압박 속에서 힘들어 하던 꿈꾼이는 자신이 사실은 자신의 성욕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자연스럽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성적 욕구를 받아들이게 되고나니까 그것이 그렇게 추한 것도 아니고, 악한 것도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미녀와 야수는 성안에서 행복하게 영원히 살게 됩니다. 그렇게 꿈꾼이는 자신안의 욕구를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로 통합해서 자신이 자신의 주인인 채로 영원히 행복하게 산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분석한 미녀와 야수입니다.

보통 저는 꿈을(혹은 상징속의 이야기를) 융의 관점에서 해석하기를 좋아하지만 이 내용은 융의 관점 보다는 프로이드의 관점으로 해석하는 편이 더 매끄럽게 되는 것 같아서 프로이드를 기반으로 해석해 보았습니다.

여러분들도 여러분들 나름의 해석을 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타로마스터 최정안.
등록자

최정안

등록일
09-18
조회
7,143

댓글 1

주선자

융의 관점도 궁굼하네요
좋은공부가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2018-07-07 19:27